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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50112 주일 | 복 있는 사람들 | 시편1:1-6 | 임현우 목사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5-01-13 07:44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시편의 형성

시편은 크게 다섯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시편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기보다 편집되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학자들을 시편의 1편을 시편 1권 또는 시편 전체의 서문으로 봅니다. 시편 146-150편은 시작과 끝에 할렐루야가 등장하여, 시편 전체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과 146-150편을 시편 전체를 감싸는 틀로 봅니다.

시편 1편의 시기

시편 1편은 이러한 편집을 고려할 때, 시편이 완성되는 단계에 위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후대의 시로 볼 수 있으며, 위치뿐만 아니라 시편 1편에서 사용되고 있는 여러 표현 등을 고려할 때 이를 뒷받침합니다. 학자들 중에 시편 1편의 시기를 기원전 2세기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시편 1편의 시기를 2세기로 본다면, 유다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을 때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점차 강압정책을 시행하고, 강제적으로 헬라화를 시도합니다. 예루살렘에는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안식일을 금지하며, 돼지고기를 먹게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을 지키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려는 자들도 있겠지만, 이방 통치자에게 동조하는 자들과 헬라화된 자들도 늘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대제사장 중에도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을 지키려는 자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앎의 여러 의미

시편 1편에서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은 직역하면 “안다”는 뜻입니다. 안다는 말은 성경에서 “인정”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아담과 하와의 관계처럼 친밀함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에 대해서 모태에서 알았다(렘1:5), 아모스서처럼 내가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을 알았다(암3:2)는 용례도 있습니다. 이러한 앎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에 대한 평가에도 이어집니다. 이는 각 교회의 행위를 향한 주님의 인정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반대로 모른다는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됩니다. 마태복음 7장 23절 (주여 주여 하는 자들)과 마태복음 25장 12절(어리석은 처녀)에서 주님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며 이는 종말론적인 심판을 가리킵니다. “안다”가 앞서 깊은 친밀감과 언약의 관계를 다룬다면, 모른다는 관계의 부재를 가리킵니다. 관계의 단절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겨처럼 어디론가 날리는 모습은 하나님이 아시는 의인들의 길과 대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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